클라이언트는 이미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. 공포에 질려 있었다. 우리 회사에서 다른 팀 프로젝트들이 연이어 사고를 쳤다. 신뢰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추락한 상태. 그들은 이제 우리 회사 로고만 봐도 의심부터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.
하필 그 살얼음판 위에서, 우리가 발을 헛디뎠다.
1. 불씨를 제공한 건 우리였다
변명의 여지가 없는 우리의 귀책이었다. 분석 방법론을 변경하는 복잡한 과정에서 담당 실무자의 실수가 있었다. 단 하루 주어진 검토 시간. 그 숨 가쁜 일정 속에서 나는 로직의 큰 흐름을 보느라, 팀원이 놓친 기초적인 데이터 설정 값을 미처 걸러내지 못했다.
'다른 3~4개의 프로젝트들과 일정이 겹쳤다', '검토 시간이 단 하루였다'는 건 핑계다. 프로라면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로직과 데이터를 모두 장악했어야 했다.
다행히 최종 납품 전, 내가 직접 데이터를 뜯어보다가 이 오류를 발견했다. 즉시 실무자에게 수정을 지시했고, 결과의 정합성까지 검증을 마쳤다. 내부적으로는 완벽히 수습된, '사고'라기보다는 '수정'에 가까운 일이었다.
통상적인 상황이었다면 "죄송합니다. 담당자 주의시키고 수정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"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. 하지만 지금은 전시였다.
이미 불신으로 가득 찬 그들에게는, 또 다른 '재앙'의 예고편으로 보였나 보다. 그들은 그동안 쌓아둔 분노를 나에게 쏟아부었다.
"이슈 에스컬레이션 해주세요."
그들은 내 과제를 별도의 사안으로 보지 않았다. 이미 진행 중인 살생부에 줄 한 줄을 더 그었을 뿐이다. "제가 발견해서 막았습니다"라는 항변은 무의미했다. 그들에게 나는 그저 '총체적 난국인 회사'의 또 다른 관리자일 뿐이었으니까.
2. 연대 책임의 굴레
전화를 끊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.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. 옆 팀들이 거하게 엎어놓은 판 위에서는, 내가 아무리 중심을 잡고 바로 서 있으려 해도 결국 비스듬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.
나의 치열했던 밤샘 검토와, 오류를 잡아낸 집요함은 '에스컬레이션'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.
누군가는 프로답지 못하다고 하겠지만 억울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. 옆 팀들이 저질러 놓은 대형 사고들에 비하면, 심지어 사고가 나기 전에 수습까지 했는데, 내 과제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이렇게까지 모욕적인 말을 들을 일인가 싶었다.
하지만 어쩌겠는가. 리더라는 자리는 원래 팀원의 과실을 내 무능으로 포장해 받아내는 자리인 것을.
3. 방패가 되어야 하는 순간
자괴감이 밀려왔다. 퇴사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.
하지만 나는 다시 메일 창을 열어 정중한 사과문을 작성한다. 여기서 내가 핑계를 대버리면, 그 비난의 화살은 고스란히 내 뒤에 숨어 떨고 있는 팀원에게 날아갈 테니까.
이미 에스컬레이션이 된 판, 욕은 내가 먹고 수습은 회사가 할 것이다. 리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격은, 윗선 뒤에 숨는 게 아니라 다시는 꼬투리 잡히지 않는 데이터를 내놓도록 팀을 다잡는 것뿐이다.
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골은 들어간다. 나는 내일도 내 자리에서 묵묵히 슛을 쏠 것이다.